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승리의 날 (문단 편집) ==== 소련의 대독 승전일 ==== [[파일:Berlin33.jpg]] [[독일 국회의사당]] 점령 뒤, [[베를린 전투]]가 끝나고 축하하는 [[제150차량화소총사단|제1벨라루스전선군 제3충격군 제79군단 제150 '이드리차' 소총병사단]] 소속 병사들. 기념일: День Побе́ды. '졘 빠볘듸'[* 구개음화 및 모음의 강세 때문에 이렇게 발음이 난다. 마지막 모음이 '의' 발음이 나고 구개음화가 없기에 마지막 발음은 지가 아니라 듸다.] >그리고 나는 외치고 싶었다. 러시아, 벨라루스, 폴란드의 땅 속에 누워 있는 이들. 우리가 거쳐온 땅에서 영원히 잠든 이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동무들, 우리가 해냈소!''' >---- >- 바실리 그로스만 (소련 종군기자), "전쟁의 해들(Годы войны, Years of the war)" 중 [[소련]] 시절에 기념이 시작된 러시아 및 과거의 소련 구성국들 기념일 중 하나로, [[제2차 세계 대전]], 러시아 중심의 표현으로는 [[대조국전쟁]]의 승전을 기념한다. 러시아에서 거의 대부분 소련 기념일들이 사라지거나 이름이 바뀐 와중에도 이 날만큼은 여전히 기리고 있다. 러시아는 나치 독일의 침략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제질서에서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등장,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련 시기에는 1945년부터 1948년까지 공휴일이었다가 해제되었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집권한 직후인 1965년부터 다시 공휴일이 되었다. "[[소련군]]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 날은, [[게오르기 주코프]] 원수의 말에 따르면, '소련 인민의 삶에서 '영광의 순간'이 되었다. 이는 소련 역사상 사람들이 조국의 승리와 자유를 위해 감당한 상실의 의미가 명약관화했던 유일한 시기다." 역사학자이자 라디오 방송 '베스티 FM'의 정치 평론가인 안드레이 스베텐코의 말이다. 사실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가 더 성대히 기념하는 기념일이다. 러시아인들의 국가적 자긍심, 긍지의 원천이다. 피할 수 없는 적과의 생사를 건 결전에서 아주 큰 희생을 치르며 승리했다. 거의 패배 직전까지 갈 정도의 어마어마한 피해에도 무너지지 않고, 결국 역으로 적의 수도를 함락시키며 완벽하게 승리했기 때문에 더없이 찬란하게 빛나는 감격스러운 승리의 날인 것이다. 승리의 날이 참전국들 중 유독 러시아에서 중요하게 대접받는 이유는 단순히 한 전쟁에서 이겨서만이 아니다. 2차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쟁이었고 그런만큼 승리의 순간을 맞이하기 전까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피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서방 국가들도 전쟁에서 피해를 본 건 마찬가지이긴 했지만 독일의 전력이 워낙에 넘사벽이다 보니 대부분 얼마 못 가 조기에 함락당하거나 항복해서 소련만큼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며, 영국은 유럽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지리적인 이점 덕분에 본국에 입은 피해가 미미했고, 미국은 아예 본국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졸지에 소련이 독일의 막강한 육해공군을 혼자서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탱커가 되어버렸기에, 그리고 전쟁 후반기에는 [[만주 전략 공세 작전|대일전쟁에도 참여했기에]] 말 그대로 수많은 인민들을 갈아넣으면서 싸워야 했다. 전후 소련에게 [[무기대여법|랜드리스]]로 많은 물자를 지원한 미국에게 소련이 실제 대여한 물자 비용의 1/10도 안되는, 그나마도 자기 재정에서 지출한 게 아니라 [[러시아 제국]] 시절 황가의 금고를 따서 꺼낸 금괴와 귀금속들만 건네주고 입을 싹 닦았어도 미국이 별 말 안 한 것은 소련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도 쉽지 않았던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만약 소련이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독일에게 조기에 항복했더라면 소련이 입었어야 했던 피해가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왔어야 했었음을 알았기에 소련이 자신들을 대신하여 피해를 입은 것만으로도 빚을 다 갚은 것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사실 그 자체도 기념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목적은 그 승리를 얻기 위해 피를 흘린 순국선열들을 기린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이 때문에 실제로 전쟁에 참가했던 유가족들이나 실제 참전용사들이 아직 많이 살아있는 러시아인들에겐 매우 특별한 날일 수 밖에 없다. 실제로도 5월 9일이 조국 러시아에 [[자긍심]]을 느끼는 계기가 된다고 인정하는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세계적으로 봐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고 러시아 역사를 봐도 역사상 비견할 예가 없는 가장 위대한 승리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러시아]]는 이른바 [[조국전쟁]]에서는 일단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을 막기는 했지만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고, [[크림 전쟁]]부터는 [[열강]]에 얻어맞기만 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 언제냐는 질문에 압도적으로 [[대조국전쟁]]에서의 승리라고 답한다. 정리하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에서 멸망 직전까지 몰렸던 소련의 기적적인 대역전승은 극적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신화적인 승리였고, 그런 신화적 서사를 가졌기 때문에 제1의 건국신화인 혁명보다도 신성시되는 제2의 건국신화가 된 것이다.[* 소련 붕괴 이후 제1의 건국신화였던 [[러시아 혁명]]이 부정당하며 이제 독소전쟁 승리는 러시아의 유일한 건국신화가 되었다.] [[파일:모스크바 전경.jpg]] [[소련]] 시절 [[붉은 광장]]에서 10월 혁명 기념일(11월 7일)에는 매년 열병식이 실시되었고 1968년까지 [[노동절]]에도 매년 실시되었지만 승리의 날에는[* 1945년 6월 24일을 제외하면] 1965년, 1985년, 1990년 단 3차례만 실시되었다. 1948년부터 [[니키타 흐루쇼프]]가 실각할 때 까지는 공휴일도 아니었다. 역사학자인 데니스 바비첸코에 따르면, [[이오시프 스탈린]]과 그 사후 소련을 이끈 [[니키타 흐루쇼프]]는 대조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군사령관들이 정치적으로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때문에 군사령관들과 참전용사들의 공적을 치하하는 일에 인색했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집권한 1965년에야 승리의 날은 공휴일로 지정되었고 열병식이 실시되었다. 승리의 날을 국가적 차원에서 전국적 규모로 성대하게 기념할 수 있도록 한 최초의 소련 지도자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였지만 붉은 광장에서의 열병식은 1968년 노동절 열병식을 폐지한 이후 혁명 기념일에만 매년 실시했고 승리의 날에는 1965년에만 치러졌다. 소련 해체 이후 10월 혁명 기념일은 없어졌고 1995년 승리 50주년 열병식 이후 매년 5월 9일에만 대규모 열병식이 실시된다. 다만 모스크바에서는 10월 혁명 기념일이 아니라 1941년의 모스크바 전투 기념일로 소규모 열병식을 연다. [[파일:external/img1.liveinternet.ru/58793755_24397972_1210103789_book204.jpg|width=600]] >'''Мы победили![br](우리는 승리하였다!)''' > >'''9 мая 1945 г. Разгромаена [[나치 독일|Германия]] завершена Великая Отечественная война[br](1945년 5월 9일 [[베를린 전투|독일을 물리치고]] 대조국 전쟁을 완료하였다)''' >'''3 сент. 1945 г. Повержена [[일본 제국|Япония]] окончена Вторая мировая война[br](1945년 9월 3일 [[만주 작전|일본을 물리치고]]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냈다)''' > >'''Слава Нашему великому народу, Народу-победителю![br](우리의 위대한 인민, 승리자 인민에게 영광을!)''' 대조국전쟁 당시 [[소련]]의 동맹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화민국/국민정부|중화민국]]의 국기도 뒷배경에서 같이 펄럭이는 것이 인상적이다. [[파일:external/i.i.ua/1036087_b247e949.jpg|width=570]] '''이 노병은 과연 얼마나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을까?'''[* 러시아 한 신문은 네오 나치를 비판하려 이 사진과 함께 [[나치식 경례]]를 하는 네오 나치의 사진을 대비시켰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레프 기체비치(Лев Гицевич, 1928.04.30.~)이며, 1941년 어머니가 [[슈츠슈타펠|SS]]에게 총살당한 것을 계기로 입대했다고 한다. 1945년 [[일본군]]을 상대로 하는 [[뤼순]] 전투에도 참여했다. [[http://photoshare.ru/photo6253786.html|이 사람이 찍힌 다른 사진.]]]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한 뒤 [[나치 독일]] 대통령이 된 [[카를 되니츠]]는, 병력을 동부전선에 집중시켜 소련군을 막아내거나, 적어도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를 맺을 생각으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아이젠하워]] 휘하의 서방 연합군에게만 항복하려 했지만, 서방도 소련도 이를 절대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기에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이 되니츠를 베를린으로 소환하여 항복을 받아냈다. 바로 이때가 베를린 표준시로 1945년 5월 8일 23시 43분이었는데, 이는 모스크바 표준시로 1945년 5월 9일 0시 43분과 같다. 이로 인해 소련의 전승기념일은 5월 9일로 정해진다. 2015년 기준으로 공휴일로 지정되어있는 나라는 당연한 러시아 외에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2023년 5월 28일 우크라이나의회에서 서방과 마찬가지로 5월 8일로 승전기념일을 변경하는 안이 통과되었다. 다만 친러성향 주민들도 의식해서인지 5월 9일은 나치즘을 기억하는 날로 결의되었다],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조지아]], [[몰도바]], 그리고 친러 성향이 강하고 여러차례 반나치 [[빨치산]] 투쟁을 이어갔던 [[세르비아]]이다. 이들도 전쟁에서 나치 독일군과 싸우며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까지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었기에[* 특히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몰도바는 전국토가 전쟁터가 되어 전쟁의 참화를 그대로 입어야 했다.] 러시아만큼 중요시하고 성대하게 기념하지는 않아도 승리의 날을 자신들의 기념일로 여긴다. 심지어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이른바 [[구암#s-2|GUAM]] 국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러시아와 [[남오세티야 전쟁|전쟁까지]] 했던 조지아에서도 여전히 기념되고 있는 것은 승리의 날이 러시아 외의 구소련 국가들에게도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2011년 조지아 외무부가 승전기념일을 5월 9일에서 5월 8일로 옮기자고 제안했고, 2013년 몰도바도 집권당이 국가 수준의 기념을 중단하자고 제안했지만 둘 다 무산되었다. 물론 시간이 더 흘러 대조국전쟁과 소련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는 조지아의 구세대가 사라지고 반러 경향이 가속화된다면 이들 국가에서는 다른 날로 옮겨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남오세티야]], [[압하지아]], [[트란스니스트리아]], [[도네츠크|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루간스크 인민공화국]] 등 러시아로의 통합을 추진하는 친러시아 미승인 국가들에서도 공휴일로 지정되어 기념되고 있다. 예외로 소련 구성국 중 5월 9일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지 않은 국가는 소련 시절 착취당한 [[발트 3국]]인데, 이들 국가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종결로 서유럽은 해방되었지만 자국은 해방되지 못했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일례로 에스토니아는 2007년 수도 탈린의 소련군 동상을 외곽으로 이전하고 이에 반대하는 [[2007년 탈린 시위|러시아계 주민들의 시위]]를 진압했다가 러시아 해커로 추정되는 세력에 의해 사이버테러를 당해 국가기간망이 거의 마비된 적도 있다.] 따라서 5월 8일을 종전기념일로 인정하고 있고 추모식을 비롯한 대부분 기념행사도 5월 8일에 열린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도 실제로 전쟁이 끝난 건 5월 9일이기 때문에 참전 노병들과 러시아계 주민들을 중심으로 9일에 종전을 기념하고 있다. || [youtube(9cfACXjU8kc?t)] || || '''2010년 5월 9일 승리의 날 열병식''' || 러시아의 [[붉은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이다. 영상의 27:32부터 보면 2010년 당시의 [[독립국가연합]] 소속국 중 일부인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몰도바]], [[타지키스탄]], '''[[우크라이나]], [[폴란드]], [[영국]], [[미국]], [[프랑스]]''', [[투르크메니스탄]] 순서로 [[연합국]]의 주요 국가들이 참여했다.[* 열병식에 참여했던 [[우크라이나]]는 4년 뒤인 2014년에 [[CIS]]에서 탈퇴했다.] '''__특히 [[미국]], [[영국]] 등 서방세력이 붉은 광장에서 행군하는 모습__'''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기 때문에 유명한 열병식이다. 2010년 당시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기에 같은 날 러시아군이 [[키이우]]에서의 열병식에 참여하기도 했고,[[https://youtu.be/joHF8F2Ki3M|#]]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과 함께 벨라루스의 [[민스크]]에서의 열병식에 참가하기도 했다.[[https://youtu.be/L8DJnYzzBIw|#]] || [[파일:미국의모스크바진입.png|width=770]] || || '''붉은 광장에서 행군하는 미군'''[* 당시의 현역 군인. 뒤에 멀리 보이는 군대는 [[프랑스군]]이다.] || [[파일:external/img.gazeta.ru/TASS_1207967-pic4_zoom-1000x1000-85122.jpg|width=770]] 2010년 5월 9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열병식. 그러나 2014년 [[유로마이단]] 이후 크림 위기와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를 겪으면서 반러 경향이 강화된 우크라이나는 2014년 4월 9일 의회에서 채택된 법안에 따라 5월 8일을 '추모와 화해의 날'로 지정했다. [[파일:external/www.novayagazeta.ru/1429362773_970980_4.png|width=770]] 2014년 5월 9일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노병들과 거리 행진 퍼레이드에 참가한 [[알략산드르 루카셴카]] 대통령. 벨라루스는 공식으로 승리의 날인 5월 9일과 함께 7월 3일을 독립기념일로 기념하는데, 이 독립기념일은 사실 소련군이 나치 독일으로부터 민스크를 해방한 날이다. 그러니까 전승기념일이 2개인 셈이다. 열병식과 대규모 공식행사는 주로 7월 3일에 열린다. 러시아와 워낙 가까운 나라인지라 열병식이 열리면 거의 매번 [[러시아군]] 보병, 기갑부대, 항공기들도 함께 참가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8EwIJjMj5dA|영상 링크]] [[파일:external/www.kazpravda.kz/554b094c3912a1430980940.jpg|width=770]] 2015년 5월 7일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열린 열병식.[* 역시 소련의 향수가 강하게 남아있는 나라여서 러시아, 벨라루스와 함께 열병식에서 소련 시절 군가를 그대로 연주하는 등 소련 시절 열병식과 비슷하게 진행한다. 위 사진에서도 오른쪽에 소련 승리의 깃발이 보인다.] 카자흐스탄은 5월 7일을 조국 수호자의 날 겸 남성의 날, 5월 9일을 승리의 날로 각각 기념하고 있다. 열병식 같은 대규모 행사는 주로 5월 7일에 열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U4DOzFoXwO4|영상 링크]] 5월 9일에는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열리는 열병식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다. [[파일:external/azcongress.ru/12156.jpg|width=770]] 2014년 5월 9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참전노병들을 맞이하는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 [[파일:external/novostink.ru/1336831187_5a.jpg|width=770]] 2012년 5월 9일 아르메니아 예레반 전몰용사 추모비에 헌화하는 정부 인사들. 아르메니아에서는 5월 9일이 '승리와 평화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http://www.panarmenian.net/rus/news/191841/|기사링크]] [[파일:external/photocdn3.itar-tass.com/3727910.jpg|width=770]] 2014년 5월 9일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전몰용사 추모비에 헌화하는 노병들 [[파일:external/photocdn3.itar-tass.com/3727906.jpg|width=770]] 2014년 5월 9일 몰도바 키시너우에서 전몰용사 추모비에 헌화하는 니콜라이 티모프티 대통령, 이고르 코르만 국회의장(좌), 유리 랸케 총리(우) [[파일:external/gdb.rferl.org/21726349-C7F0-4083-AAA0-9B238BFEF4B2_w900_r1_s.jpg|width=770]] 2011년 5월 9일 타지키스탄 두샨베에서 전몰용사 추모비에 헌화하는 타지키스탄군 의장대 [[http://2.firepic.org/2/images/2014-05/10/uz3qsokxg5ry.jpg]] 2014년 5월 9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전몰용사 추모식에서 조포를 발사하는 우즈베키스탄군 의장대. [[파일:external/osinform.org/1210326893_5.jpg|width=770]] 2008년 5월 9일 남오세티야 츠힌발리에서 열린 열병식 [[파일:external/pravdanews.info/554dd5f45b260_1431164404.jpg|width=770]] 2015년 5월 9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도네츠크에서 열린 열병식 [[http://localjournal.ru/wp-content/uploads/2015/05/dsc_8406.jpg]] 2015년 5월 9일 트란스니스트리아 티라스폴에서 열린 열병식 [[파일:victory-day-in-sukhumi_26817007822_oLOW.jpg]] 2016년 5월 9일 압하지야 수후미에서 열린 열병식 [[파일:external/si.wsj.net/BN-HJ197_0311ru_P_20150311181420.jpg]] 2014년 모스크바에서 행진 중인 러시아군. 이날 러시아를 방문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열병식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5136657|때문에 공항에 갇혔다.]] 푸틴은 오후에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위기의 크림반도]]로 가서 흑해함대를 사열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899332|#]] 약 4년간의 [[독소전쟁]] 동안 군인과 민간인 합쳐서 대략 2,8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확한 수치는 아무도 모른다. 참고로 다른 나라는 독일 900만, 폴란드 600만, 프랑스 60만, 영국 45만, 미국 40만 정도이다. 전쟁 막바지에는 스탈린조차도 [[게오르기 주코프]]에게 '''"이제 우리나라엔 전쟁으로 친지를 잃지 않은 사람이 없을 걸세."'''라며[* 러시아의 거의 모든 가정마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2010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승전 6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의 몇 안되는 진실로 침통한 표정을 보였다고 한다. [[이오시프 스탈린]]도 큰 아들을 독일군에게 잃었다.[* 장남 [[야코프 주가시빌리]]는 포병 대위로 참전했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된 자는 반역죄로 취급하고 가족들도 처벌하라"는 스탈린의 지시대로 야코프의 가족들을 투옥시켰다. 야코프는 포로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스탈린은 야코프가 사망했다는 공식 정보를 받은 뒤에야 야코프의 가족들을 석방했다.] 스탈린은 종전 후 승전 축하연에서도 '''"우리의 승리에 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모든 것은 소련 인민들의 피와 땀이 이룩한 것입니다."'''하고 연설을 했다. 이날이 되면 참전했던 노병들에게 꽃을 선물하고 꺼지지 않는 불 앞에 꽃을 바치며 전쟁 당시 사망한 전몰용사들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관례다. [[파일:external/u16.s.vpenze.ru/img-20150322111137-578.jpg|width=770]] 묵념하는 러시아군 장병들 [[파일:external/e2ba9acff3aee4c7ff0b8f19be9588363e36eedabc10c5aafa0d141a95af6144.jpg|width=770]] 크렘린 벽에 위치한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각국 정상들. 러시아 대표 TV 뉴스보도 프로그램인 [[브례먀]](Время)도 이날만큼은 특수 오프닝을 사용한다. [[http://www.youtube.com/embed/LNoYKyZvNjA]] [youtube(LNoYKyZvNjA, width=100%)] 러시아 도시 튜멘에서 촬영된 영상. 방송이 나올동안 대부분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전몰용사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차에서 내려 묵념에 동참한다.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여파로 인해 5월 9일 전승 기념행사를 연기하기로 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가 오늘 마주하고 있는 위협에서 벗어난 뒤 5월 9일 예정돼 있던 모든 행사를 확실하게 열 것”이라고 밝혔다.[[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417/100695850/1|#]]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중 소련/러시아의 침략과 전쟁범죄를 옹호하기 위한 선전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전후 처음으로 '소련의 대독 승전 기념'에 대한 재평가와 반감이 특히 동유럽을 중심으로 퍼졌다. 관련 기념물들도 철거되거나 훼손됐으며, 러시아와 가까운 국가들에선 전승절을 기념한다고 나온 러시아계 주민들이 체포되기도 했다. 2022년에는 러시아에서 외국 정상들을 초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https://www.kommersant.ru/doc/5338400?from=top_main_7|#]] 2023년에는 우크라이나 4개 지역 점령지까지 행사했다.[[https://m.yna.co.kr/view/AKR20230507022900096?section=international/all|#]] 한편 우크라이나는 기존 승리기념일을 5월 8일로 변경하고 9일은 유럽통합의 날로 바꿨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1846474?sid=10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